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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로, 스페인 교향곡

▣ 랄로, 스페인 교향곡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은 종종 교향곡으로 오해되곤 한다. 그러나 실제 이 작품은 교향곡의 형식을 갖춘 작품은 아니다. 바이올린 독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이란 점에서는 협주곡이라 볼 수도 있으나 이 곡은 전형적인 협주곡 형식에서도 벗어나 있다. 모두 5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마치 여러 춤곡들을 모아놓은 모음곡 같기도 하므로 [스페인 교향곡]은 엄밀한 의미에서 교향곡도 협주곡도 아니다. 하지만 [스페인 교향곡]이란 작품명 그대로 스페인 풍의 음악인 것만은 확실하다. 전 악장에 걸쳐 ‘하바네라와 ‘세기디아’ 등 스페인 음악의 향기가 작품 곳곳에 배어있다.



특수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색채


스페인 풍의 [스페인 교향곡]을 작곡한 에두아르드 랄로 역시 스페인 혈통의 음악가다. 랄로의 집안은 대대로 훌륭한 군인들을 배출한 군인 집안으로 17세기에 플랑드르 지방으로 이주해 정착했다. 랄로의 부친 역시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훌륭한 군인이었다. 그런 그가 맏아들이 음악가가 되는 것을 완강히 반대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집안 전통을 깨고 음악가가 되겠다는 랄로의 꿈은 부친의 반대로 좌절되는 듯했다.

 

소년 시절의 랄로는 바이올린과 첼로 레슨을 조금 받을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그에게 허락된 음악교육의 전부였다. 그러나 직업 음악가를 향한 열망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랄로는 집안의 도움 없이 홀로 파리로 건너가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그곳에서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프랑수아 아브넥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운 랄로는 틈틈이 작곡도 하여 1847년에 당대 최고의 콩쿠르인 ‘로마 대상’에서 2위를 차지하면서 음악가로서 인정받았다. 그 후 아르맹고 4중주단에서 비올라와 제2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연주자로서도 활발한 연주활동을 했다.


랄로는 현악 연주자로서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바이올린협주곡 f단조]와 [첼로협주곡 d단조], 그리고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작품인 [스페인 교향곡]을 작곡해 현악기에 대한 그의 탁월한 감각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랄로의 [바이올린 협주곡 f단조]는 거의 연주되지 않지만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스페인 교향곡]은 초연 당시부터 지금까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랄로는 이 작품을 스페인 출신의 비범한 바이올리니스트인 파블로 사라사테를 위해 작곡했다. 1875년 2월 7일, [스페인 교향곡]의 파리 초연 당시 바이올린 독주를 맡은 것도 사라사테였다. 초연 이후 이 작품은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필수적으로 공부해야하는 주요 레퍼토리로 정착되었다.


[스페인 교향곡]에는 독주 바이올린의 현란한 기교가 강조될 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음색에 있어서도 특이한 점이 나타난다. 트라이앵글과 작은북, 하프 등, 일반적인 협주곡에서는 드물게 나타나는 특수 악기들이 편성되어 이 곡에 화려한 색채를 더한다. 또한 현악 주자들이 휘파람소리와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하모닉스 주법까지 구사하는 등 특수한 연주기법이 사용되고 관습에서 벗어난 악기용법이 나타나 듣는 재미를 더한다. 그러나 이런 점 때문에 간혹 이 작품은 지나치게 화려한 외양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 역시 이 곡을 가리켜 “지극히 유쾌하고 신선한 곡이지만 진지한 것 같지 않다”고 평했다. 그러나 짧은 중간 악장들을 장식하는 랄로의 매혹적인 선율을 잘 들어보면 화려한 외양 뒤에 숨은 애수 띤 정서와 진지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바이올린의 현란한 기교, 이국적인 스페인 향기


빠른 템포의 1악장은 교향곡이나 협주곡의 1악장이 대개 그러하듯, 소나타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 전 악장 중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가장 충실하고 잘 갖추어진 느낌을 주는 음악이다. 그러나 랄로가 주제로 사용한 선율 자체는 [하바네라]를 연상시키고 있어 스페인적인 느낌을 준다. 하바네라는 쿠바의 하바나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2박자의 춤곡으로 19세기 후반에 유럽에 들어와 스페인에서 크게 유행했다. 하바네라의 리듬형은 첫 박이 매우 강하며 점음표로 되어있고 곧이어 짧은 16분음표과 8분음표 2개로 이어진다. 탱고의 바탕이 되기도 하는 이 리듬은 [스페인 교향곡] 1악장의 두 번째 주제에서 암시된다. 오케스트라가 하바네라의 리듬을 연주하는 가운데, 독주 바이올린이 관능적인 스페인 풍의 선율을 선보이며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2악장은 ‘스케르찬도’(Scherzando), 즉 해학적이면서도 변덕스런 느낌의 음악이다. 랄로는 2악장에서 랄로는 격식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분방하게 그의 매혹적인 악상을 펼쳐놓고 있어 어떤 면에서는 1악장보다도 2악장에서 그의 개성이 더 잘 드러난다. 오케스트라가 수시로 독주 바이올린의 선율을 방해하는 듯 하여 재미있다. 이 악장 도입부에서 현악기의 피치카토(pizzicato, 현악기의 줄을 손가락으로 퉁겨 연주하는 기법)와 하프가 마치 기타 소리와 같은 음향을 들려주는 것도 독특하다. 무게감 없이 가볍게 날아오르는 바이올린 선율은 그 성격으로 보면 스페인 남부에서 유행한 3박자의 음악인 ‘세기디아’와 유사하다.


3악장 간주곡은 초연 당시 생략된 채 연주되었을뿐 아니라 는 이유로 한동안 연주회에서 생략되곤 했다. 게다가 러시아 바이올린 악파의 대부 레오폴트 아우어가 “이 악장은 다른 악장들에 비해 연주효과가 적다”고 말하는 바람에 이러한 관습은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하바네라 풍의 3악장은 급격한 음역 변화와 관능적인 표현이 나타난 매혹적인 음악으로, 이 악장을 생략한 채 연주하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다행히 명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이 1933년에 3악장을 복원해 연주한 이후 오늘날에는 3악장을 생략하지 않고 전 5악장을 모두 연주하게 되었다.

 

4악장은 거창한 선언문처럼 시작된다. 클라리넷과 바순, 금관, 첼로, 더블베이스 등 모두 낮음 음역의 악기들이 처음부터 묵직하게 등장해 인상적이다. 이윽고 바이올린이 어둡고 진지한 테마를 연주하는데, 그 느낌이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와 매우 유사하다.


5악장은 바이올린의 재빠른 움직임과 날렵한 기교가 강조된 화려한 음악으로 처음에는 고음 목관악기들과 하프의 하모닉스가 반복되다가 바순이 고집스럽게 반복음형을 연주하면서 시작된다. 바순의 반복음형은 점차 전체 오케스트라로 번져갔다가 다시 잦아들면 독주자가 경쾌하고 발랄한 주제를 연주하며 재치 있는 음악을 선보인다. 전곡을 통해 바이올린의 첫 주제는 여러 번 되풀이되고 그 사이사이에 바이올린의 현란한 기교가 펼쳐진다.


[출처] 네이버캐스트